[이 아침에] ‘신언서판’
아마 40세 이하의 한인 중에는 ‘신언서판 (身言書判)’ 이라는 한자 표현을 들어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오래된 한자 표현을 가르쳐 주려는 사람도 드물고, 설령 설명해 주려고 해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일 것이다. ‘신언서판’은 옛날 중국에서 관리 임용 기준으로 삼았던 4가지 덕목을 말한다. 첫 번째인 ‘신’은 단정한 외모이고, 두 번째 ‘언’은 소통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서’는 글공부와 지식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고, 네 번째 ‘판’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덕목들은 2023년, 현재도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실제로 ‘신언서판’을 갖춘 사람들이 모두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대답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 인가의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성공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참고로 해 보면 이 4가지 조건이 신빙성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는가 판단해 볼 수 있다. 현재의 대통령부터 정치와 경제, 교육계 지도자들이 과연 단정한 외모에 언변도 출중하고, 학식이 깊고, 판단력을 갖춘 존경할만한 인물들인가를 평가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판’은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자격이기 때문에 쉽게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 4가지 덕목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가를 꼽으라면, 사람마다 답이 다를 것이다. 신, 언, 서 모두 중요하지만, 세상 살아가는 데에는 이 3가지 덕목들보다, ‘판’ 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판단하는 능력은 선천적 능력에 더해 후천적인 훈련과 경력을 통해 배우고 향상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46대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이 벌써 시작됐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후보도 있고, 앞으로도 여러 명이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은 여러 후보의 ‘신언서판’ 점수를 평가한 후 후보를 선택하면 어떨까? 물론 ‘신언서판’의 조건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중시하느냐는 미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의 지도자가 되려는 후보들의 ‘신, 언, 서’ 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조건들이다. 반면에 그보다도 더 중요한 ‘판’은 겉으로 쉽게 알아보기도, 측정하기도 쉽지 않은 능력이다. 단정한 외모에 유창한 언변, 명문대 졸업이라는 조건을 갖춘 후보자들은 많다. 그렇지만 어떤 정책이 국민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지,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어떤 정책이 유효한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지도자는 국민의 신임을 받고,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1년 후에 실시될 대통령 선거에서 ‘신, 언, 서’ 보다 ‘판’ 이 결정의 요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순진 / 교육학 박사이 아침에 신언서판 소통 능력 선천적 능력 대통령 선거운동